Donghoon Gang is an artist, composer, and researcher based in Germany and Korea.
Through diverse media works that cross boundaries between exhibition and performance, visual and auditory, he dissolves borders between sculptural language and music, exploring integrative and alternative forms of expression.
Based in ethnomusicology and music psychology, he examines how sound and music are consumed and instrumentalized or misused for specific purposes in history and society. Utilizing acousmatic techniques that minimize visual information and maximize auditory imagery, he explores the experimental expansion possibilities of invisible media.
Recently, he has been tracing the influx of Western music into East Asia, driven by imperialist desires and the pursuit of modernity. He examines the resulting musical hierarchies and their colonial transformation, re-evaluating the remaining vestiges through a post-colonial lens.
[KR]
Addendum to Axioms for a Sonic Ontology, 장한길
20세기의 기하학 문제 중 하나로 이런 물음이 있다. 북의 모양을 알면 방정식을 통해 그 북에서 나올 수 있는 고유주파수를 모두 결정할 수 있는데, 반대로 그 고유주파수를 안다면 거꾸로 북의 모양을 알아낼 수 있냐는 물음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답이 내려졌는데, 그건 바로 단 하나의 북이 아닌 서로 다른 모양의 두 가지 북이 동일한 고유주파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리를 묘사하는 말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물음과 답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음—’이라는 하나의 소리이자 말은 나지막한 긍정의 표현일 수 있지만 한편 부정의 답을 예비하는 소리일 수 있고, 어쩌면 그 의중을 알리지 않은 채 끝끝내 그 모호한 상태를 즐기는 소리일 수도 있다. 물론 어떤 말은 ‘단 하나의 소리’와 독점적으로 연결되곤 한다. 특징적인 소리를 가진 악기의 구음이 그런 경우다. ‘더러러러’라는 구음으로부터 우리는 얇디 얇은 대나무로 만들어진 채가 가죽 위를 가볍게 스치며 튕기는 소리를 꽤나 빠르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쿵’ 같은 말은, ‘음—’이라는 말만큼이나 복잡한 실례들과 엮여 있다. ‘쿵’은 수많은 악기 소리는 물론 여러 물리 현상에 대한 말로도 쓰일 수 있는 탓에 우리는 이 말을 읽고 어떤 것이 부딪히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소리인지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언어로 압축 기술되어 있는 많은 일이 그러하듯이.
*
Rat-a-tat, Pom-pom, Bang!은 조밀한 파열음부터 점점 더 큰 폭발음으로 나아가는 ‘의성어’들의 연쇄다. 의성어는 소리를 본뜬 말이다. 소리시늉말, 소리흉내말이라고도 불리는 이 말들은 사물의 모양이나 사람의 움직임을 한 단어로 압축 변환한다. 의성어가 가장 돋보이는 순간은 지나간 소리를 생생한 글로 묘사할 때다. 소리를 기록하는 방식이 오늘날처럼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 의성어들을 활용하고 심지어 창안할 수 있는 사람들은 문자로도 소리를 불러올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로 여겨졌을 것이다. 의성어가 돋보이는 또 다른 순간은 그건 아마 사물이나 동물, 사람이 내는 특정 소리를 학습시키는 때일 것이다. 예컨대 ‘오리는 꽥꽥’ ‘고양이는 야옹’이라고 가르치는 일은, 우리가 의성어를 어떻게 사용해왔는지에 관한 사회적 약속을 확산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Rat-a-tat’에는 어떤 약속이 새겨져 있는가. 작고 좁은 통로를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를 닮은 이 말은 영어권에서 기관총이 발사되는 소리를 뜻하는 의성어로 통용된다. 그러나 동시에, 드럼처럼 금속성의 파열음이 포함된 악기 소리들을 지칭하는 맥락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편 통용되는 의미와 무관하게, ‘Rat-a-tat’이라는 말 자체는 플루트에서 빠르게 호흡을 끊어서 내뱉을 때의 소리와 일부 유사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Pom-pom’은? 약간의 어택 사운드가 있지만 둥글게 울려퍼지는, 진폭이 큰 소리를 나타내는 말처럼 느껴진다. 말하자면 오케스트라 리허설 도중에 지휘자가 팀파니 사운드를 입으로 묘사할 때 자연스레 튀어나올 것만 같은 발음이지만… 이 말은 역시 총기류, 자동 기관총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Bang!’ 역시 거대한 폭발음이다. 이 말은 그 종류가 무엇이든 ‘강한 소리’를 내야하는 순간이라면 언제든지 자유자재로 쓰일 수 있다. 동시에 언제든 ‘강한 힘’이 부여되는 순간(따라서 그만큼의 기압 변화가 생겨 거대한 폭발음으로 이어지는 순간)에도 쓰일 수 있다.
세 종류의 의성어는 무언가를 두드리는, 무언가와 부딪히는 타악 소리와 닮았지만 동시에 이들은 특정 무기에서 발현되는 소리의 모습과도 닮았다.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이 소리들은 언제 어떻게 우리의 문화 속에서 사용되는가. 전쟁의 순간을 담은 그래픽 노블의 한 구석에 적혀 있을 것만 같은 단어들이자 음악가의 입가에서 자주 맴돌 것 같은 이 소리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것이라 추정해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모의 훈련, 리허설의 시간이다.
어떤 사태를 대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건을 겪어낼 자신의 몸을 그 상황에 맞춰 대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복합적인 소리를 인간 언어로 압축한 이 의성어들은 대체로, 인간이 어떤 것을 몸에 기입하기 위한 훈련 시간에 효과적으로 쓰인다. 예컨대 무대에서 클라이막스를 만들기 위해 몇번이고 그 시간을 미리 겪는 연주자들의 손과 입에서. 혹은 승리를 가져다줄 일격의 순간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가다듬는 이들의 몸에서. 수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 의성어들은 곧 연습의 언어다. 이 말이 차지하는 범위보다 훨씬 더 크게 울려퍼질 어떤 현실을 대비하며 사람들은 훨씬 작은 공간 속에서, 한껏 압축된 소리들을 계속해서 몸에 새기고 또 새기며 다가올 날들을 준비한다. 단 한번의 일격을 위해 준비하고 대비하고, 그 미래의 시간을 앞당겨 몇번이고 일찌감치 경험해보는 시간들. 손실 압축된 이 말들은 그런 순간의 한 구석에 놓이는 하나의 요소다.
Rat-a-tat, Pom-pom, Bang! 의 전시장에는 알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는 이들의 시간과 도구와 무대가 있다. 거칠거칠한 감각들로 가득한 이 장소는 하나의 일격 이전, ‘꽝’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이전의 시간들을 다룬다. 누군가는 영원히 연습의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잘 갈고 닦인 무기처럼 악기를 공들여 준비한다. 그 일들이 벌어지는 장소는 말끔히 완성된 곳이 아닌, ‘준비중’의 상태라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다. 무언가 계속 ‘다시’ 시도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곳에는 뜯어진 포스터 자국과 하나의 벽이 되기 이전, 유닛들의 경계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노골적인 구조물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곳은 무엇보다도 좁다(마치 누군가의 연습실처럼).
한쪽 벽면에 걸린 렌티큘러 프린트 작업, ‘Sisyphean drumming’은 오랜 시간 연주되어온 드럼의 단면을 담는다.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장면을 보여주는 이 프린트의 표면 아래 검어진 스네어의 중앙부, 힘의 흔적이 남아있는 심벌의 한 부분이 눈에 띈다. 오랜 시간 누군가의 손에 꼭 맞게 연주됐을 것만 같은 이 악기는 한껏 달궈진 연장의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반대쪽 벽면에는 가까스로 첼로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첼로의 지판이자 현이자 동시에 활을 닮은 어떤 형상이 있다. 소리의 울림을 만들어주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첼로 브릿지 위에 놓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첼로 뮤트(cello mute)다. 그 뮤트를 중심으로 첼로는 거울반전된 것처럼 같은 모양으로 위아래로 뻗어나가고 그 끝점에 놓인 줄감개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는 이상한 교착 상태를 이룬다. 전시장의 좁은 벽면에 놓인 작업에서 몸과 악기 사이, 악기의 부분과 부분 사이의 긴장감이 감도는 와중 그 사이에 펼쳐지는 것은 조금 더 느슨하게 유예된 상황이다.
‘DRY RUN’은 세 명의 음악가가 행하는 ‘모의 훈련’의 장면들을 담는다. 그들은 매일 같이 악기 앞으로 다가가 아주 간단한 소리내기부터 복잡다단한 음악 앞에서 멈춰서기를 반복한다. 때론 그 사이사이에 전혀 음악과 무관해보이는 움직임들도 포함된다. 총 18분 동안 이어지는 이 영상들은 음악가 개개인이 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시간을 그들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데 집중한다. 각자에게 편안한 카메라를 하나씩 쥐고, 순간순간을 기록해둔 이 영상들 속에서 그들이 곧 공연할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지만 때론 이것이 어떤 음악이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소리들이 흐트러진 채로 들려온다. 연습은 예비 차원에서 실전을 그대로 겪어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훌륭한 연습과 준비 시간은 결코 실전과 완전히 동일할 수 없다. 연습의 시간에서는 작은 순간 하나하나가 아주 긴 시간으로 늘어나고, 유예되며, 그 최종 형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흩어진 상태가 된다. 예컨대 공연이 하나의 손실압축이라면, 연습의 시간은 그 변화폭에 대비해 몸을 한껏 부풀리는 초과 팽창의 시간이다.
그리고 흐트러진 몸짓들을 반복하는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예민한 감각으로 소리에 반응한다. ‘DRY RUN’의 옆 공간의 어둠 속에서 점멸하는 조명은 그 깜깜한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소리에 반응한다. 그것은 전시장을 오가는 우리 귀에 똑같이 들려오는 소리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결코 그 수행자들의 몸 바깥으로 다 퍼져나오지 않을, 상상 속에서 들려오는 더 크고 해상도 높은 소리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Absorber II: Hide and Seek, insulation’이 전시장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건, 이 훈련이 이루어지는 진짜 장소가 언제나 그들의 신체 ‘내부’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게 읽힌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이곳의 대부분이 방음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훨씬 더 깊은 공간이 이 뒤에 펼쳐져 있지만 지금 보이는 면적이 이토록 협소한 것은 이곳이 어떤 의미에서든 완성된 무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습의 시공간은 나아가 음악가 자신에게도 아직 다 드러나지 않는 소리를 찾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 내부의 깜깜한 벽을 뚫고 그들이 쫓는 소리를 정확히 포착해야만 한다. 전시 Rat-a-tat, Pom-pom, Bang!은 그런 비가시적 영역을 가시적인 영역보다 훨씬 넓게 설정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의 비율은, 아마도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앞으로 주어질 시간의 비율에 상응할 것이다.
전시장에서의 일들은 ‘Rat-a-tat, Pom-pom, Bang!’으로 형용될 수도 있을 어떤 사건을 앞두고 펼쳐지는 일종의 ‘예행’이다. 이 훈련들로부터 우리가 어떤 미래의 사건을 만나게 될지 파악하는 것은 아마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의 실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고 그 암묵적인 영역은 언제나 깜깜하다. 소리들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도 또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하지만 이곳에서 분명히 감각되는 것은 ‘그 다음’이라는 시간으로 향하는 힘이다. 언어로 압축 기술된 많은 일들이 이미 울린 소리들을 어떻게든 되짚어보려는 사후적인 일들이라면, 전시장의 가장 어두운 곳에 펼쳐진 것은 아직 울리지 않은 소리들을 대비하며 지금 들려오는 말과 소리를 넘어서는 일들이다. 시간의 방향은 거기서 아직 오지 않은 곳으로, 미지의 영역으로 훌쩍 전환된다. 모의 훈련, 리허설, 연습의 시간이 마련해주는 것은 바로 그 깜깜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미래다. 언젠가 말했듯, 연습의 현재가 어떤 모양이든 연습은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부터 출발한다. 미래가 오지 않는다면, 왜 연습을 하겠는가?
[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