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hoon Gang is an artist, composer, and researcher based in Germany and Korea.
Through diverse media works that cross boundaries between exhibition and performance, visual and auditory, he dissolves borders between sculptural language and music, exploring integrative and alternative forms of expression.
Based in ethnomusicology and music psychology, he examines how sound and music are consumed and instrumentalized or misused for specific purposes in history and society. Utilizing acousmatic techniques that minimize visual information and maximize auditory imagery, he explores the experimental expansion possibilities of invisible media.
Recently, he has been tracing the influx of Western music into East Asia, driven by imperialist desires and the pursuit of modernity. He examines the resulting musical hierarchies and their colonial transformation, re-evaluating the remaining vestiges through a post-colonial lens.
[KR]
[Addendum to Axioms for a Sonic Ontology, 장한길]
대만, 1922년
다나베 히사오(田辺尚雄) 선생이 대만 본도인(本島人)의 음악 조사를 행하고 있을 때, 일본인 관료가 말했다. "[대만에는] 노래(歌)라면 있지만 음악(音樂)은 없습니다"라고[1].
베를린, 1885년
1885년, 베를린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카를 슈툼프(Carl Stumpf)는 독일 할레대학교 지리학연구소에서 열린 아홉 명의 눅살크(Nuxalk) 원주민 악단의 특별 공연에 참석한다[2]. 슈툼프는 펜을 들고 오선지 위에 그들의 음악을 받아 적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전혀 청음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1886년 발표한 논문 「벨라쿨라 인디언의 노래(Lieder der Bellakula-Indianer)」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연주자들이 열정을 더해가자, 우리[유럽인]의 귀에 익지 않은 음정[音程]은 점점 더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거듭나 버렸다." 유럽인들이 유럽 밖에서 '원주민'들을 마주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자 난색을 표하는 모습은 근대 문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다. 1801년,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가 적은 일기에는 콜롬비아의 막달레나 강 뱃사공(bogas)들이 노를 저으며 내던 소리를 그가 처음 들었을 때 받은 충격과 혼란함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3]. 그의 형인 빌헬름 폰 훔볼트의 영향을 크게 받은 오스트리아 음악학자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slick)는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다.
남태평양 제도의 원주민들이 박자에 맞춰 금속과 나무 막대기를 흔들며 파악할 수 없는 울부짖음을 내는 것은 자연 음악이다. 즉, 그것은 음악이 전혀 아닌 것이다[4].
비유럽인의 음악은 음악이 아닌 것이라고 속단한 훔볼트와 한슬리크와 달리, 슈툼프는 자세히 들어보면 '눅살크 음악'에서도 음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음악의 측면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민족이 '야만적'이라거나 '미개'하다고 성급하게 발언하지 말아야 한다[5]." 특별공연이 끝난 뒤, 그는 공연 브로커와 협의 끝에 악단의 가수 중 한명과 독대를 성사시켰고, 나흘 동안 만나며 매일 1-2시간씩 독창을 요청했다. 그는 합창과 기악 연주를 모두 배제한 환경에서 눅살크 가수의 노래를 몇십 시간씩 들으며 채보를 시도했고, 서서히 그의 독창 속에서 음정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악단이 청중 앞에서 공연할 때, 슈툼프는 온전히 갖춰진 상태의 음악을 자신이 받아적은 악보와 비교했고 낯선 창법과 음색 뒤에 '가려졌던' 멜로디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슈툼프는 자신이 받아적은 멜로디를 취합해 분석한 결과 눅살크 음악이 체계적인 5음음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단순히 '자연 음악'으로 치부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특히 음향심리학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이 경험을 근거로 청취라는 것은 단순히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형성되는 습관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한스리크나 훔볼트처럼 유럽인들이 '원시적'이라고 간주한 문화권의 음악을 성급하게 '자연 음악'이라거나 '음악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는 것을 두고 "유럽인의 귀로 비유럽권의 음악을 들으려고 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유럽인이 '타자'의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사람의 귀를 새로이 조율해야만 했고, 이를 위해선 비유럽권 음악을 실제로 최대한 많이 들으며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했다.
밴쿠버, 1976년
카를 슈툼프 뿐만 아니라, 에리히 폰 호른보스텔(Erich von Hornbostel)과 같은 그의 제자들 또한 음악에 관해 편향적인 청취 양상을 지칭할 때 '유럽인의 귀'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편향없는 청취, 편견없는 듣기가 꼭 '음악'에만 적용될 필요가 있을까? 음악으로 치부되지 않는 '소리'는 어떨까? 실제로 이러한 질문은 20세기 후반 전후 실험음악의 대두와 함께 서양음악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다뤄진다. "모든 소리에는 음악이 깃들어 있다"라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한 유명한 사례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다. 그는 동명의 시간동안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상태의 공연장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를 청중으로 하여금 듣게 만들었다.
이러한 듣기가 꼭 공연장에서만 행해져야 할 필요는 없다. '사운드스케이프'라는 개념으로 잘 알려진 캐나다인 작곡가 그리고 '소리연구' 분야의 개척자 중 한 명인 레이먼드 머레이 쉐이퍼(R. Murray Schafer)는 인간 청취의 주관적・문화적 편향이 단지 음악만이 아니라 소리 전체에도 적용된다고 보았다.
당연히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것을 들으며, 개인 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따라 듣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증거도 많다. ... 왜 우리는 어떤 소리에는 집중하는 반면 다른 소리는 듣지 않는 것일까? 문화적으로 차별받기 때문에 전혀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을까[6]?
슈툼프와 마찬가지로, 쉐이퍼는 의식적인 학습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외지의 음악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의 모든 소리를 듣고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특히 그가 '소음'을 정의하는 방식에 이러한 믿음이 잘 드러나 있다. 쉐이퍼는 "소음이란 우리가 듣지 않도록 학습된 소리"라고 주장했으며, 따라서 소음 공해란 "사람이 무언가를 귀기울여 듣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아무리 소음으로 인식되는 것도 주의깊게 들어보면 어떠한 종류의 소리인지, 무엇으로 인해 발생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방음 등의 저감低減적인 방식(오늘날의 '노이즈 캔슬링' 기술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다)이 아닌 오히려 그 반대, 즉 귀 기울여 듣는 능력의 함양을 '소음 공해'의 대책으로 제시했다. 지금은 널리 활용되고 있는 그의 교수법인 '사운드워크'나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소리의 세밀한 묘사 등을 통해, 쉐이퍼는 사람들이 마치 '비판적 시각'과 마찬가지로 "음향 환경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청각 능력을 길러낼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의 청각적인 저변이 더욱 넓어질수록 우리 주변의 '사운드스케이프'는 더욱 아름답게 거듭날 수 있다고 믿었다.
비판적 듣기
강동훈은 전시 공간에 소리를 가져다 놓고, 관객으로 하여금 듣게 한다. 너무 당연해서 생각해 볼 여지조차 없는 명제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함의가 있다. 먼저, 굳이 소리를 전시장으로 옮겨 오는 이유는 '음악 감상' 혹은 공연을 위해 조성된 공간에서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청취 형태에서 벗어나, 청취 행위 자체를 질문하기 위해서다. 다른 방식의 청취의 가능성이 모색되는 불특정 공간으로 옮겨져 온 소리 또한 그것이 발생한 장소 혹은 맥락으로부터 탈착된 것으로, 그것이 들리기 위해서 '음악,' 소리 그리고 '소음' 등의 관념에 대한 해체와 성찰을 요구한다. 따라서 그가 가져다 놓은 소리를 단순히 감상을 위해 작곡된 음악으로, 전시장에서 '재생' 또는 '공연'될 것으로 이해해 버리면, 이를 단순히 '앰비언트' 음악이나 '미니멀리즘' 음악처럼 하나의 장르 또는 스타일로 치부하고 넘겨버리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강동훈이 전시 공간에서 모색하는 비판적 듣기란 무엇인가. 이는 앞서 언급했던 슈툼프나 쉐이퍼가 생각한 이상적인 형태의 청취와는 아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알려면 쉐이퍼와 슈툼프의 뼛속 깊이 자리한 서구중심적으로 편향된 음악관을 살펴봐야 한다. 먼저, 쉐이퍼에게는 '보존해야 할 소리'와 '제거해야 할 소리' 사이의 구분이 굉장히 명확했다. 그가 소음을 파악할 수 있는 청취력의 함양을 주장한 것은, 케이지나 소로처럼 '소음에도 음악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원하지 않는 소리의 발생원을 구분・포착하고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보존하고 장려하고 확산시키고 싶은 소리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것을 파악하게 되는 순간, 지루하고 파괴적인 소리 또한 드러나게 되고 동시에 [그 소리의 원천을] 제거할 방법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그에게는 음악과 음악이 아닌 소리의 구분도 꽤 명확했다. 아마 다음의 두 구절에서 그의 입장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저는 음악 작곡이 사운드스케이프 작업[research]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에 말했듯이 둘은 연관되어 있죠. 우리는 음악이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매력적이길 바랬죠. 사운드스케이프가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음악을 작곡할 때는 늘 어떤 자아중심적인 충동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저도 작곡가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건데요. 저는 음향 환경의 작업과 작곡을 분리시켜 둡니다. 대부분의 작곡가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7].
에스키모족은 놀라울 정도로 비음악적인 민족이기 때문에, 작곡가가 그들의 것을 음악적으로 가공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이 쥐어짤 수 밖에 없다. 에스키모의 가창과 윈스턴 처칠 경이 목을 가다듬는 소리는 아주 두드러지게 닮아 있다[8].
다음으로는 카를 슈툼프를 살펴보자. 슈툼프가 추구했던 것은 서양음악 중심의 미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적 듣기'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듣기의 조건 자체가 서구중심적인 음악적 요소로 짜여져 있다는 점을 그는 간과했다. 슈툼프에게 있어 음악이란 의식적인 음고의 구축이었으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정과 화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타악기와 여러 명의 가창자로 구성된 악단에서 가창자 한명만을 분리시켜 그의 노래에서 눅살크 노래 특유의 목소리 음색을 배제하고 음정을 분리하여 파악하려고 했던 것이다. 눅살크 노래에서 무엇이 음악적인 요소이고 무엇이 음악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아닌지에 대한 자신의 암묵적인 기준에는 유럽중심적인 음악관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점을 슈툼프는 의식하지 못했다.
강동훈의 많은 작업들이 요구하는 비판적 듣기란, 음악이나 소음으로 구분되는 소리를 모두 아우르는 것을 넘어 그러한 범주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는 특정 문화적인 패러다임 혹은 '편견'까지 포착해내는 것을 가리킨다. 〈Not Quite My Tempo!〉(2023)가 나치 독일이 규정한 '불온한'—또는 '퇴폐(entartet)'—음악과 '건전한 음악'의 리듬중심적인 기준을 질문에 부치고 있다면[9], 구체적이기로 유명한 독일의 주택 소음방지법을 다룬〈Ruhezeit〉(2022)는 '조용함,' '상식적 수준의 소음'에 대한 문화적 기준의 모호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또한, 무엇이 소음에 해당할지 아닌지를 '작곡'의 소재로 삼음으로써 작가는 쉐이퍼의 사운드스케이프 개념을 거꾸로 뒤집는 동시에 소음과 '아름다운 소리'에 대한 쉐이퍼의 기준에 깃든 불명확함 또한 암시한다. 관객은 단순히 귀기울여 듣고 파악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듣기에 암묵적으로 깃들어 있는 문화적 편견까지 포착해내기를 요구한다.
우리의 음악적 경관에 서구중심적 음악관이 너무 널리 그리고 깊게 스며들어 있는 오늘날, 듣기에 깃든 문화적 편견을 포착하는 일이란 사실 매우 어렵다.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 또한 중요한 〈Octave〉(2023)는 특정한 조합의 음(화음)이 야기하는 감정을 다루고 있다.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단3도를 더한 화음은 슬프고 장3도를 더한 화음은 활기차다는 설명인데, 사실 이 또한 서양음악의 영향으로, 여러 음향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특정 화음이 야기하는 감정이란 내재적이나 자연적인 것이 아닌 학습을 통해 그리고 문화적으로 형성된 측면이 훨씬 크다[10]. '쿨레쇼프 효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11], 사진 속 얼굴의 표정만큼이나 특정한 화음이 야기하는 감정이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혹은 모호한—것이다.
사실 모호함은 음악이라는 용어 자체에도 깃들어 있다. 오늘날 한자권 동아시아에서 사용되는 '음악'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music, musique, musik 등의 번역어이다. 이들 용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무시케(μουσική; mousikḗ)'로, 기악이나 성악뿐만 아니라 무용과 시 또한 아우르는 개념이다.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음악'이 동아시아에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한자로 된 대부분의 근대 개념이 그렇듯) 메이지 시대 일본을 통해서인데,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인간이 소리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행위를 아우르는 용어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대부분 유교의 예악禮樂사상의 '악樂'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계급(정악, 속악, 노가쿠[能楽]), 토착성(당악, 아악, 향악, 호가쿠[邦楽]) 등에 따른 용어가 세분화되어 있었을 뿐이며, 이 대부분의 용어는 소리 뿐만 아니라 춤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음악이란, 근대에서 일어난 정치・사회・문화적 격변의 산물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본고 서두에서 인용한, 대만에서 음악조사를 하고 있던 다나베 히사오에게 일본인 관료가 대만인은 노래라면 있지만 음악은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해진다. 널리 퍼지기 시작한 '음악'이라는 번역어가 이전 시대의 구분법과 충돌하며 생긴 혼종적 인식의 산물인 것이다. 음악과 소리를 둘러싼 상이한 인식의 충돌, 그리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야말로 강동훈의 전시가 들려주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1]
음악학자 킷카와 에이시(吉川英史)가 일본의 저명한 민족음악학자 다나베 히사오와의 대화에서 들은 내용이라고 한다. 인용은 다음 참조. 吉川英史, 「「音楽」という用語とその周辺」 『日本音楽の美的研究』(音楽之友社, 1984), 41.
[2]
오늘날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지역 원주민으로, 19세기 당시에는 유럽인들이 붙인 이름인 벨라 쿨라(Bella Coola)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었다.
[3]
Alexander von Humboldt, Tagebücher der Amerikanischen Reise VII a/b, Nachlasse Alexander von Humboldt, Staatbibliothek zu Berlin, Preußischer Kulturbesitz. 아카이브의 인쇄용 페이지 기준이 아닌 일지 원본 페이지 기준으로 13-14쪽 참조. 디지털화된 자료는 베를린 국립도서관의 다음 링크의 디지털 자료관 참조. https://digital.staatsbibliothek-berlin.de/werkansicht?PPN=PPN779883861&PHYSID=PHYS_0001 (2025. 8. 29. 확인).
[4]
Eduard Hanslick, Vom Musikalisch-Schönen: Ein Beitrag zur Revision der Ästhetik der Tonkunst (Leipzig: Barth, 1902[1854]), 183–4. 강조 원문.
[5]
Carl Stumpf, “Lieder der Bellakula-Indianer,” 426.
[6]
R. Murray Schafer, A Sound Education: 100 Exercises in Listening and Sound-Making (Arcana: 1992), 7-8.
[7]
Rafael de Oliveira, Patrícia Lima, and Alexsander Duarte,"Interview with Murray Schafer (Corfu 2011)," 2014. 10. 13., https://www.youtube.com/watch?v=Hu4au_4Jlfo (2025. 8. 28. 확인). 해당 발언은 04:38부터.
[8]
R. Murray Schafer, “On the Limits of Nationalism in Canadian Music,” Tamarack Review 18(1961). 쉐이퍼의 이러한 글귀가 화제가 된 것은 캐나다 선주민족 출신 소리연구자 딜런 로빈슨의 다음 저서 덕분이다. Dylan Robinson, Hungry Listening: Resonant Theory for Indigenous Sound Studie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9), 1.
[9]
실질적으로 나치가 통제하던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체코문학의 거두 요세프 슈크보레츠키(Josef Skvorecky)는 그의 소설 〈베이스 색소폰〉에서 당시 행해졌던 나치 독일의 댄스 오케스트라 검열 지침에 대해 상세히 회상하는데, 세 번째로 나열한 항목이 리듬에 관련된 부분을 다루고 있다.
3. 템포에 있어서 느린 것 보다는(예컨대 블루스) 활발한 곡이 선호되지만, 일정 수준의 알레그로 이상으로 빨라서는 안되며 기강과 절제에 대한 아리아민족의 감각과 상응하여야 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과도한 흑인종 리듬(일명 핫 재즈)과 솔로 퍼포먼스(일명 브레이크)는 허용되지 않는다.
J.J. Gould, "Josef Skvorecky on the Nazis' Control-Freak Hatred of Jazz," The Atlantic, 2012. 1. 3., https://www.theatlantic.com/entertainment/archive/2012/01/josef-skvorecky-nazis-jazz/250837/ (2025. 8. 29. 확인). 필자 강조.
[10]
Richard Parncutt, "The emotional connotations of major versus minor tonality: One or more origins?" Musicae Scientiae 18.3(2014): 324-353; Imre Lahdelma, Tuomas Eerola, and George Athanasopoulos, "Sweetness of Harmony is in the Ear of the Beholder: Preference of Musical Chords Across Western and Northwest Pakistani Listeners,"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1502.1(2021): 72-84.
[11]
소비에트 영화인 레프 쿨레쇼프(Lev Kuleshov)가 배우 이반 모주힌(Ivan Mozzhukhin)의 무표정한 얼굴 샷을 (1) 스프, (2) 관에 누운 어린 소녀, (3) 누워있는 여성의 샷과 병치시켰을 때, 관객이 배우의 표정을 각각 배고픔, 슬픔, 성욕 등으로 다르게 해석했다는 것을 토대로 정립한 몽타주이론. 영상의 개별 샷은 전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며, 편집을 통해 관객에게 특정한 감정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EN]